응급실 '뺑뺑이'가 일어나는 이유
의대 정원 문제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극에 달하고 사직 전공의와 의대생 휴학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요즘,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소위 응급실 '뺑뺑이' 현상입니다. 이는 응급환자가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치료 시기를 놓쳐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속출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특히 매우 상태가 위중한 중증 환자가 병상을 찾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사망자 속출은 물론 의료 붕괴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병상 부족과 인력난
응급실 '뺑뺑이' 문제의 핵심 원인은 위급한 환자를 모두 수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병상 규모와 응급 의료 인력의 부족입니다. 빅 5 병원을 비롯한 전국의 대형 병원들은 이미 병상 가동률이 포화 상태에 도달했으며, 특히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중환자들을 수용해야 하는 중환자실(ICU) 병상은 거의 여유가 없습니다.
더욱이 응급실을 운영하는 의료진 역시 밀려드는 응급환자를 모두 감 담해 내기에 역부족일 만큼 인력이 매우 부족하여 환자 수용에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환자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중증 환자의 치료가 지연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중증도 판단의 어려움
응급실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신속하고 정확하게 중증도를 평가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응급 의료 시스템에서는 환자의 중증도를 빠르게 판단하여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첫째가는 핵심 과제로 삼고 있지만, 실제 각급 병원 응급실에서는 체계적인 시스템 부족과 부족한 의료진의 과중한 업무로 인해 환자의 중증도를 평가, 판단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는 결국 불필요한 이송을 야기하거나, 그 반대로 목숨이 위태로운 중증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 나아가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르는 일도 야기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응급 의료 체계의 문제점
필수 의료 인프라 부족
세계 최고라 평가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지만 대부분의 첨단 의료 역량과 인프라가 수도권 대형 병원에 집중되어 있어, 지방에서는 응급 환자가 제대 필요한 치료를 받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구조입니다. 대부분 지방의 응급의료센터는 의료 장비와 전문 의료진이 부족해 환자를 수도권 병원으로 이송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그러나 수도권 대형 병원 역시 수용가능한 환자 수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들 병원 간 이송이 반복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례: 강원도 원주의 한 대학병원 사례
2024년 9월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는 한 60대 남성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으나,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강릉아산병원에서 병상 부족을 이유로 이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 환자는 구급차를 타고 서울의 빅 5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으로 향했지만, 병원 도착 직후 심정지가 발생해 끝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환자의 비극은 지방 응급의료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입니다.
응급의료 전달체계의 비효율성
응급환자의 이송 체계도 매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응급환자 이송 시스템은 명확한 체계가 확립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응급 상황에서도 병원들 간 조율이 원활하지 않아 응급 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응급실이 병상부족이나 의료진 부족으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경우에도 뚜렷한 대책이 없어 구급차에서 환자가 장시간 대기하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례 : 서울 시내 대형병원들의 현실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등 서울 주요 대학병원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응급환자 전원을 거절하는 일이 아주 잦게 일어납니다. 한 예로 지난 2024년 3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50대 환자가 응급차로 서울 시내 여러 병원을 거쳐 최종 인천의 길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송 과정에서 이미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습니다.
의료진의 과중한 업무 부담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은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응급실은 응급 환자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긴장된 상황이 하루 종일 이어지는 응급의학과 특성상 24시간 운영이 원칙이기 때문에 타과 대비 근무 강도가 매우 높고, 술 취한 환자나 폭력적인 환자로부터 폭언 및 폭행을 당할 위험도 무척 큽니다. 이러한 응급실 근무 환경은 결국 응급의료 인력의 유출을 초래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의료 시스템 전반의 악순환을 초래합니다.
해결 방안 및 대책
공공의료 확충과 지역의료 강화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공의료 확충과 지역 의료 강화가 필수적입니다. 지방에도 수도권처럼 중증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더 많이 확충하고, 권역별로 응급의료센터도 더 많이 늘려야 합니다. 또한, 의료 전담 기구를 중심으로 병상 가동률을 효율적으로 조절하여 응급환자가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응급환자 이송 시스템 개선
환자가 중증도에 따라 최적의 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될 수 있도록 응급환자 전원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응급의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실시간 병상 현황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중증도 분류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환자가 불필요하게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응급의료 인력 지원 확대
과로와 격무에 시달리는 응급의료진의 처우 개선과 인력의 대대적인 확충도 필수적인 대책입니다. 응급실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폭력 예방 조치를 강화하며, 응급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늘리고, 지방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급의료진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의 정책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맺음말
응급실 '뺑뺑이' 현상은 단순한 의료 문제 수준을 넘어 사회적 위기로까지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가 함께 협력하여 응급의료 시스템을 신속히 개선하고, 지속 가능한 응급 의료 체계를 제대로 구축해야 합니다.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는 의료 인력과 의료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시켜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응급환자가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위해서도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라 하겠습니다.